걷기의 유혹: 남파랑길 방랑기 3



걷기의 유혹: 남파랑길 방랑기 3

걷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우리 삶의 깊은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도보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다양한 경치를 감상하는 것과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각과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18세기 영국 시인 엘리자베스 카터는 걷기를 “가장 소중한 만병통치약”이라고 표현했으며, 이는 걷기가 주는 매력과 중독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처음 이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는 아무런 기대 없이 단순히 발걸음을 내딛었지만, 점차 그 유혹에 빠져들게 되었다. 사랑에 빠지는 감정처럼, 걷기는 나를 모르는 거리로 이끌며 나의 내면을 탐색하게 만든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남파랑길의 8박 9일간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다. 하동, 광량, 여수권의 47코스에서 58코스까지의 구간을 걸으며, 가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이미 여러 도보여행을 경험하며 “왜 걷는가”라는 질문이 나를 이끌게 되었다. 해안길과 산길, 그리고 마을길을 걸으며 매일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걷는 동안 느끼는 기쁨과 힘든 과정은 나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인간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렇듯 걷기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나와 세상,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연결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인 것이다.

2026년 기준으로 이날은 10월 19일로, 나는 제주도에서 출발해 김해 공항에 도착한 후 부산 경전철을 타고 서부터미널로 이동하여 시외버스를 타고 노량정류장에서 47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이 여정은 175km에 달하는 길고도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10월 27일에는 58코스의 종점인 소라면 현촌리와 가사리 생태공원에서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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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하동 섬진강 47코스: 탐험의 시작

47코스는 남해 대교에서 하동 송림공원 입구까지 이어지는 27.4km의 길이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를 만들어 나간다는 신념으로 신발끈을 조였다. 첫날의 여정을 시작하며,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에서 노량항, 금남면사무소, 금남체육관을 지나 소공원, 해안도로, 그리고 사동마을까지 이어지는 길은 나를 다양한 풍경 속으로 안내했다. 47코스는 남파랑길의 90개 코스 중 가장 긴 구간으로, 결코 헛걸음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이상 할 일도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직접 체험하는 삶의 가치를 느끼게 되었다.

코스를 걸으며 바닷가 길을 따라 남해대교의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이 다리를 건너면 남해읍이 기다리고 있다. 이 지역은 음식점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활기를 띠고 있었다. 노량항에 도착하니 이순신의 노량해전을 기념하는 안내문이 눈에 띄었고, 고기잡이 배들이 오가는 모습이 생동감 넘쳤다. 바다 아래에는 참숭어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었고, 그 지역의 특산물임을 알리는 듯했다.

걷다 보니 금남면 지역으로 접어들며, 풍성한 벼들이 수확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풍경 속에서 소공원에 도착하자, 한 노인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세월의 무게를 느끼며, 나 또한 그렇게 늙어가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주며, 과거를 회상하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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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을 따라 걷다

이제는 즐거운 마음으로 대성마을을 지나며 비포장도로를 걸었다. 길가에는 밤송이 껍질과 매달린 감들이 아른거렸다. 도토리와 석류도 반짝이며 한 해의 결실을 알리고 있었다. 오리골 저수지를 지나며 조용한 마을길을 걸었고, 논밭이 한가로이 펼쳐져 있었다.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 속에서 나는 허수아비와 함께 곡식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하동 금오산이 멀리 보이는 가운데, 나는 ‘이곳만이 내 세상’이라는 펜션의 간판을 발견했다. 젊은 여성이 보였고, 커피를 주문하자 오늘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하며 걱정의 손짓을 해주었다. 응원의 메시지를 받으며 다시 길을 나섰다. 남해고속도로 아래를 지나며 금계국이 노랗게 피어있는 모습을 보며 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 수확하는 농부들과의 대화 속에서 현실적인 농민들의 어려움도 느낄 수 있었다.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만이 그들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주교천 다리를 건너며 섬진강의 흐름을 바라보았다.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며 신비로운 모습으로 나를 반겼고, 섬진강 건너편은 전라도 광양 지역이었다. 조개섬캠핑장과 선소공원을 지나며 나는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을 떠올렸다. 그의 시에서 강은 그를 품지 않았다는 고백이 깊이 남아있었다.

자연과의 교감

걷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내 마음 속에서 커져만 갔다. 신마방마을로 향하는 길은 부드러운 감정을 안겨주었고, 강변할매재첩회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재첩국, 재첩덮밥, 참게정식 등 다양한 메뉴들이 나를 유혹했지만, 나는 마음을 다잡고 계속 걸었다. 마을의 할머니가 힘겹게 동네길을 걷는 모습을 보며 우리 모두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하동포구공원에 도착하자 배돗대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안내판에 따르면 하동 포구공원까지는 아직 10여 킬로미터가 남아 있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47코스의 종점인 하동 섬진교 동단에 도착해야 했다. 저녁 7시경 송림공원에 도착했지만 이미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테마모텔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잠에 들었다.

이렇게 하루를 정리하며, 남해교차로에서 하동 송림 입구를 지나 하동군청 소재지의 테미모텔에서 첫날을 마무리했다. 먼 길을 걸으면서 느낀 원시적인 향수는 내게 긍정적인 마음을 주었고, 죽음보다는 살아있다는 용기를 갖게 해주었다. 이름 없는 낮선 곳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걷기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남파랑길 하동 섬진강 48코스: 새로운 시작

48코스는 섬진교 동단에서 진월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13.7km의 여정이다. 둘째 날, 나의 눈과 귀, 입을 섬진강 줄기와 구름에 맡기며 걷기를 시작했다. 아침 공기가 쌀쌀하게 느껴졌고, 하동 송림공원에서 시작하는 길은 고요함을 자아냈다. 아침의 안개가 섬진강가에 깔려 있었고, 그 풍경은 나에게 새로운 감정을 안겨주었다.

출발지인 하동 송림공원에는 47코스를 안내하는 간판이 없었고, 섬진교를 건너면서 걷기가 시작되었다. 두리번거리며 섬진강 둔치로 내려가니, 좌우로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곳을 지나며 시인과 철학자, 걷는 이 모두가 자연의 창조세계를 바라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모니철교 아래에서 잠시 쉼을 취하며 대나무 쉼터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다 보니, 나의 생각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오늘의 여정이 결코 나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매 순간이 소중하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진월초등학교에 도착한 후, 윤동주 망덕포구 시비공원에서 그의 시를 다시 읽으며 그 시인의 세계에 잠기었다. 이곳에서 나는 섬진강 길 걷기를 길 소풍이라 부르기로 했다. 침묵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모든 것을 잊고 걷는 기분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이처럼 걷기는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며,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내면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앞으로도 이러한 여정을 통해 얻는 경험들은 나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